『우상의 눈물』에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열 편의 작품(「우상의 눈물」 「돼지 새끼들의 울음」 「껍데기 벗기」 「바다 재우기」 「왜」 「술법의 손」 「먹이그물」 「소인의 나들이」 「소설, 과외 지대」 「음지의 눈」)이 실려 있다. 이 소설들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지난 시기 교육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훈육 권력의 횡포와 부조리, 출세 지향적인 처세술과 허위 같은 것들이다. 이를 두고 교육 현장을 다룬 전상국의 소설을 실제 정치권력의 축도 혹은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전상국의 학교 소설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파시즘적 통치성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소설이 단지 그런 알레고리의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 속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인간관계들 속에는 어느 하나로 축약하거나 환원할 수 없는 독자적인 개성과 풍부한 디테일이 살아 있다. 전상국은 교육 현장을 지배하는 온갖 부조리와 허위, 거기에 동반되는 억압적인 감시와 통제의 그물망, 그 모든 것들을 합리화하는 개발 체제의 훈육 이데올로기, 온갖 비리와 처세술이 난무하는 교육 현장 속에서 교사로서 갈등하는 소시민의 고뇌와 소심한 일탈 같은 것들을 세세하게 소설의 화폭에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억압적인 감시와 통제를 바탕으로 횡행하는 훈육 권력의 양태와 그 권력의 균열과 실패를 다루는 곳에서 작가의 필치는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런데 이 훈육 권력의 균열과 실패, 그리고 그것을 유발하는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저항을 통해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개인의 단독자로서의 자유의지다. 바로 그것이 억압적이고 허위적인 권력의 감시와 통제를 균열시키고 실패하게 만든다. 교육 현장을 다룬 적지 않은 소설들 속에서, 작가는 오래전부터 바로 이 간단하지만 중요한 진실을 우리에게 차근히 들려주고 있었다. “「우상의 눈물」 등 아홉 편의 단편소설과 중편소설 「음지의 눈」을 한데 모아 중단편소설 전집 4 『우상의 눈물』을 묶는다. 1963년 등단 이후 십여 년간 작품 활동을 제대로 못하다가 새로이 글쓰기를 시작한,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에 쓴 작품들 중에서 주 관심사였던 분단 관련 소재의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 당대 입시 위주의 빗나간 교육 현장 구성원들 간의 불만과 갈등을 나름의 서사 디테일로 절절히 풀어내는 즐거움이 컸던 것들만을 따로 모은 것이다. 교실 소재의 이 작품들이 당대 교육 실태와 그 관행을 되돌아 짚어보는 각성으로서의 의미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교직 체험에 근거한 교육 문제를 다룬 교육 소설의 차원을 넘어 교실을 사회의 한 축도로 그 시대 합법을 가장한 잘못 쓰이는 힘의 정체와 그 부조리를 빗댐 구조로 형상화하는 데 더 무게를 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무섭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우상의 눈물」 끝 구절) 그때 세상이 그랬다. 특히 70년대 말, 아니 오늘도 세상은 여전히 그렇다. ‘우리’의 일사불란한 행진을 저해하는 ‘나’가 아무렇지 않게 잘려나가는, 획일화 그 동일시의 악랄한 힘에 대한 분노 혹은 그 반란. 갇혀 있던 울타리를 뛰쳐나온 ‘돼지 새끼들’의 울음도 ‘우상’이 흘리는 눈물도 그 길들임의 메커니즘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하여 어둠의 자식들, 그 열외 괴물들의 섬뜩한 액션, 선보다는 악, 풍요보다는 결핍, 가해보다는 피해에 대해,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패 놓기. 반듯함이나 정제된 아름다움보다 예측 불가능 상태의 진흙탕 텀벙거리기. 그 시절 작가로서의 상상 텃밭이 대체로 그랬다. ”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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