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 하나하나가 색깔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두터운 질감을 머금고 버무린 시는 흰 하늘에 아롱진 빛을 내고 있다. 시는 먼 하늘에 걸려있지 않고 친근하게 내려온다. 늘 가까이 있는 일상에서 제재를 건져 툭 하고 감각의 안테나를 깨워 삶의 소리를 바람결에 실어 속삭인다. 시인은 평범한 이야기를 연금술사처럼 특별한 이야기로 능청스럽게 바꾸어 내밀하게 속삭인다. 그에게 시는 삶과 분리되지 않은 채 말과 말의 무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반자이다. 시인의 가슴은 아프고 여린 세상의 소리를 담는 그릇이다. 아니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물렁하고 부드러운 속살로 변해 간다. 그의 시는 봄바람처럼 그릇 위를 살랑살랑 불면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히 적시며 세상으로 흘러간다. 시간의 비문을 열면 상상의 고삐 풀리리니 삶이 텁텁한 날엔‘ 여우다방’에 가자. 잠시 그렁그렁 빗장을 풀고 흐릿한 기억의 꽃을 피워보자. 젖은 바람이 마르면 춤추는 이파리의 이마엔 혈이 돌고 그 후끈한 이마에 손 얹으면 어느 은하의 오래된 전설인 듯 비릿한 파도 소리는 소금 먹은 추억처럼 달려와 안길 것이다. 시인은‘ 여우다방’에 무엇을 숨겨 두고, 바다에 꽂은 깃발처럼 오라 손짓하는 것일까. 음색은 달라도 닮은 꼴 소리들이 살짝 발 담그고 가는 곳. 시인은 하루치 무게를 털어내려 자분자분 무의식의 백지 위에 나팔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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