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내가 뭐 어때서 : 황선만 소설집
돈에 병든 인간들에 대한 풍자 농촌 사회에 대한 도시인들의 왜곡된 이미지는 주로 미디어에 의해 가공된다. 혹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 나가 사는 사람들의 추억에 의해 이상화된다. 황선만 작가는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의 생활도 결국 욕망의 출렁임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과장되지 않은 풍자와 유머로 그리고 있다. 첫 소설집이기도 한 『내가 뭐 어때서』는 그러한 인간 군상들의 초상으로 짜여져 있다. 추천사를 쓴 이시백 소설가의 말대로 “속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비정하여 자칫 천잡하기 쉬운 세태의 풍경들”이다. 「준법정신」의 앞부분에서 작가는 도시인들의 근거 없는 농촌에 대한 환상을 야유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 리포터라는 젊은 여자가 나와 냉이를 캐면서 “와- 흙냄새를 맡으니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어쩌구 하면서 수선을 떨었다. 농사는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꼭 봄이 되면 들을 찾아다니면서 흙 내음이 어떠니 대지의 기운이 어떠니 떠들썩거린다. 이제 언 땅이 풀리고 새봄이 찾아왔으니 방송국마다 한참 동안 봄 타령을 할 것이다 -「준법정신」 중 하지만 이런 도시인에 대한 야유는 결국 주인공인 ‘김정수 씨’ 자신에 대한 자기폭로로 이어진다. 운 좋게 소작을 부치고 있는 밭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그의 손에 들어오자 그만 자기 욕심에 덜컥 걸려들고 만 것이다. 어쩌면 “이 집 저 집 날품팔이로 고생만 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의 이야기에 드러나 있듯이 그동안 적잖이 힘들게 살아온 자기 삶에 대한 보상 심리 탓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주인공은 소작 부치던 밭을 매입한 뒤로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움도 없이 방류해버린다. 이때 그가 앞세우는 것은 ‘법’인데, 도청 공무원인 며느리와 반려동물 애완용품점을 하는 아들을 앞세워 자신이 사는 마을 공동체의 윤리를 무너뜨리고 마는 것이다. 작품의 결론은 주인공이 골탕을 먹는 것으로 그치지만 이 작품은 농사를 짓던 땅이 부동산이 돼버린 세태에 대한 씁쓸한 풍자다. 작가의 세태 풍자는 「내가 뭐 어때서」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품은 사진작가인 주인공이,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잊혀져간 삼산리의 광산 노동자들과 삼산리이야기협동조합을 꾸려 군청에 지원한 사업이 선정된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성호와 탄광 노동자 생활을 접고 식당을 하는 달수, 영덕, 달수의 조카 철민이 한 팀이 돼 생애사 기록 사업 공모에 선정되었지만 달수, 영덕, 철민의 욕망에 배신당한 성호의 이야기이다. “야, 영덕아! 순진헌 소리 허덜 말어. 공모 신청인지 뭔지를 누구 이름으루 혔냐? 협동조합 이름으로 혔잖어! 내가 이사장이구, 너희 둘이 이사 아니냐. 세상이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겨. 사실상 성호 성님이 무슨 자격으로 요구헐 수 있겄어. 안 그려? 더구나 동네에 온 지 얼마 안 된 외지인까지 우리가 챙겨야 헐 필요가 있겄어?” -「내가 뭐 어때서」 중 성호는 다시 한번 “돈에 찌들다 못해 돈에 병든 인간들을” 마주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병든 인간들”은 이미 서울에서 숱하게 만났던 것이고 그들을 피해 산골 마을인 삼산리로 왔지만, 거기에도 그런 인간들은 있었던 것이다. 성호는 눈 녹은 느티나무라도 찍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더라도 자신의 눈에는 “보일 것이다”고 자위하지만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건대, 작가의 그런 바람은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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